어르신에게 나타난 기억력 저하, 원인은 영양 결핍
오래전 병동에서 돌봤던 한 어르신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기억력 저하와 만성 피로로 입원하셨는데, 방금 나눈 이야기를 몇 분 지나지 않아 다시 물으시고, 낮 시간 내내 침대에서 졸음에 겨워 계셨습니다.
식사량도 눈에 띄게 줄어 있었고, 가끔은 병실 위치를 헷갈려하시기도 했습니다. 보호자분들은 혹시 치매가 시작된 게 아닌지 많이 걱정하셨습니다. 신경과 협진과 함께 여러 검사를 거쳤지만 치매를 확진할 만한 소견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혈액검사에서 비타민 B12 수치가 눈에 띄게 낮게 나왔고, 적혈구 크기도 다소 커져 있었습니다. 병력을 살펴보니 그 어르신은 오래전부터 위장약을 장기 복용하고 계셨고, 육류를 거의 드시지 않는 식습관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B12 결핍이 단순한 영양 문제가 아니라 인지기능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영양 결핍이 부르는 기억력 저하, 얼마나 흔한가
이 경험 이후로 찾아보니 B12 결핍은 생각보다 흔한 문제였습니다. 65세 이상에서는 약 10~15%가 결핍이거나 경계 수준에 해당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위산 분비가 자연스럽게 줄어드는데, B12는 음식 속 단백질과 분리되어 흡수되려면 위산이 꼭 필요합니다.
그래서 위산분비억제제(PPI 계열, 예: 오메프라졸) 같은 위장약을 오래 복용하는 분들, 당뇨약으로 메트포르민을 복용 중인 분들도 결핍 위험군에 속합니다. 채식주의자나 비건이라면 애초에 동물성 식품 섭취량 자체가 적으니 위험도가 더 높아지는 것도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돌봤던 어르신처럼 위장약 복용과 채식 식습관이 함께 겹치면, 흡수와 섭취 두 경로 모두에서 결핍 위험에 노출되는 셈입니다. 문제는 이런 위험 요인을 가진 분들도 정작 본인이 결핍 위험군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신다는 점입니다.
영양 결핍을 채우는 음식과 보충제
B12는 동물성 식품에만 들어있고 식물성 식품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고기, 조개류(특히 바지락), 고등어, 계란, 유제품에 풍부하게 들어있어서, 한국 음식으로는 바지락칼국수나 굴, 계란찜 같은 메뉴가 좋은 공급원이 됩니다. 평소 식사에서 이런 음식들을 자주 챙기는 것만으로도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식사만으로 채우기 어려운 경우에는 보충제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경구용 제제는 매일 복용하는 방식으로, 흡수율이 다소 낮더라도 꾸준히 먹으면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혀 밑에 녹이는 설하정은 경구용보다 흡수가 조금 더 잘 되는 편이라 위장 기능이 약한 분들에게 권해지기도 합니다.
위축성위염이나 위 수술 이력처럼 흡수 자체에 문제가 있는 분들에게는 주사가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근육주사로 투여하며, 초기에는 주 1~2회로 자주 맞고, 수치가 어느 정도 회복되면 이후에는 월 1회 정도로 간격을 늘려 유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 본인의 위장 상태와 흡수 능력을 고려해서 의료진과 상의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어르신의 기억력 저하, 그냥 넘기지 마세요
그 어르신을 돌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기억력 저하나 피로감을 무조건 노화나 치매로 단정 짓기 전에 이렇게 교정 가능한 원인부터 하나씩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위장약을 오래 드시는 분이나 육류 섭취가 적은 분이라면, 건강검진 때 기본 항목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비타민 B12 수치를 따로 챙겨서 검사해 보시는 걸 꼭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결핍이 오래 지속될수록 신경학적인 증상은 회복이 더뎌질 수 있기 때문에, 의심이 든다면 미루지 않고 확인해보시는 게 좋습니다. 작은 확인 하나가 불필요한 걱정과 증상의 진행을 막아줄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배웠습니다.
부모님이나 주변 어르신 중에 비슷한 상황이신 분이 있다면, 다음 검진 때는 꼭 이 수치를 함께 확인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병원에서 오래 일하면서 느낀 건, 이렇게 흔하면서도 놓치기 쉬운 원인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입니다. 앞으로도 제가 직접 곁에서 지켜본 사례들을 통해, 놓치기 쉬운 건강 신호들을 하나씩 풀어드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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