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간 (인슐린저항성, 과당, 심혈관위험)
건강검진 결과지에서 '지방간 의심'이라는 문구를 보면 많은 분들이 "주변에도 다 있던데요." "술도 안 마시는데 별일 아니겠지." 하며 가볍게 넘기곤 합니다. 하지만 중환자실에서 간경화 말기 환자를 돌보며 느낀 것은, 그분들 중 적지 않은 분들이 과거에는 지방간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사실입니다. 지방간은 매우 흔하지만, 결코 가볍게 넘길 질환은 아닙니다.
지방간, 술 안 마시는데 왜 생기냐고요? 인슐린저항성 때문입니다
진료실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저 술 한 방울도 안 마시는데 지방간이라고요?"입니다. 저도 병동에서 이런 상황을 수도 없이 봤습니다. 술보다 더 조용하게, 더 광범위하게 지방간을 만드는 주범이 따로 있습니다. 바로 인슐린 저항성(Insulin Resistance)입니다.
인슐린 저항성이란, 혈당을 낮추는 호르몬인 인슐린이 분비돼도 세포가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열쇠(인슐린)는 있는데 자물쇠(세포 수용체)가 잠겨 버린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세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포도당이 남아돌고, 그 포도당이 결국 간으로 흘러들어 지방으로 전환됩니다. 이것이 지방간의 핵심 발생 메커니즘입니다.
흰쌀밥, 떡, 빵, 국수 같은 정제 탄수화물을 즐겨 먹으면 혈당이 급격히 오르고, 인슐린이 과다 분비됩니다. 이게 반복되면 세포는 인슐린 신호에 무감각해지기 시작합니다. 중환자실에서 당뇨 합병증 환자를 돌볼 때마다 느꼈던 것이, 이 인슐린 저항성이 당뇨와 지방간, 고혈압, 고지혈증을 한꺼번에 묶어 놓는 고리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병태생리학적으로 이 질환들은 뿌리가 같습니다.
특히 폐경 이후 여성분들이 "다이어트한다고 과일이랑 고구마만 먹는데 배만 나온다"라고 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걱정이 앞섭니다. 과일과 고구마도 혈당을 빠르게 올리는 식품입니다. 다이어트 식단이라 생각하지만 간에서는 지방 합성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겁니다.
대사이상지방간질환(MAFLD), 명칭이 바뀐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술과 관계없는 지방간을 "비알코올성 지방간질환(NAFLD, Non-Alcoholic Fatty Liver Disease)"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최근 국제 학계에서 이 명칭을 "대사이상지방간질환(MAFLD, Metabolic-Associated Fatty Liver Disease)"으로 바꾸었습니다. 단순히 이름만 바꾼 것이 아닙니다. 지방간을 더 이상 간만의 문제로 보지 않겠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입니다.
MAFLD는 간에 지방이 있으면서, 동시에 한 가지 이상의 대사 위험 인자를 갖는 경우를 말합니다. 여기서 대사 위험 인자란 과체중(BMI 23 이상), 당뇨 전단계 또는 당뇨, 고혈압, 중성지방 150mg/dL 이상, HDL 콜레스테롤 감소 등을 포함합니다. 성인 4명 중 1명이 이 기준에 해당한다는 추계가 있을 만큼 매우 흔한 상태입니다.
경험상 지방간 소견을 가진 환자분들은 항상 혈압약이나 혈당약, 고지혈증약 중 하나 이상을 복용 중이었습니다. 고혈압, 고혈당, 고지혈증이 지방간과 함께 묶여서 오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 질환들은 인슐린 저항성이라는 공통 토양 위에서 함께 자라납니다.
간섬유화(Liver Fibrosis)도 반드시 짚어야 합니다. 간섬유화란 간세포의 반복적인 염증으로 인해 간 조직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손등을 매일 긁으면 피부가 딱딱해지듯, 간도 염증이 반복되면 서서히 굳어갑니다. 섬유화 1단계까지는 예후에 큰 차이가 없지만, 2단계부터는 간경화와 간암 위험이 급격히 올라간다는 점은 꼭 알아두셔야 합니다(출처: 대한간학회 지방간 진료 가이드라인).
지방간의 심혈관 위험, 간암보다 심장마비가 먼저 옵니다
많은 분들이 지방간을 걱정할 때 "간암으로 가는 거 아닌가요?"라고 물으십니다. 물론 장기적으로 그 경로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습니다. 대사이상지방간질환 환자의 사망 원인 1위는 간 관련 합병증이 아니라 심혈관계 질환입니다.
지방간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전체 사망률이 1.6배 높고, 심혈관계 질환 발생 위험은 약 1.3배 이상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심근경색(Myocardial Infarction)과 뇌졸중(Stroke)이 대표적입니다. 심근경색이란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막히는 질환이고, 뇌졸중은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지방간으로 인한 전신 염증 반응이 혈관벽에도 영향을 미쳐 이런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중환자실에서 근무할 때 저는 이 연결고리를 실감했습니다.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으로 입원하신 분들의 기왕력을 보면, 수년 전 건강검진에서 지방간 판정을 받았지만 그냥 넘겼다고 하시는 경우가 정말 많았습니다. "저도 지방간 있는데" 하며 서로 위로받는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때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또한 지방간이 있는 여성에서는 유방암, 대장암, 위암 발생 위험도 높아진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간 문제가 아니라 전신의 만성 염증 상태로 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방간은 몸이 내미는 노란 경고 카드입니다. 건강검진에서 지방간이 나왔다면, 이것은 이미 대사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결국 식단, 그다음이 운동입니다
체중의 5~10%만 빼도 지방간이 개선된다는 것은 여러 임상 연구에서 확인된 사실입니다. 90kg이던 분이 20kg을 뺀 후 초음파에서 지방간이 완전히 사라진 사례는 실제로 흔합니다. 식단에서는 정제 탄수화물과 가당 음료를 줄이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지중해식 식단처럼 채소, 통곡물, 단백질 위주로 구성하면 도움이 됩니다.
운동은 주 3회 이상, 땀이 살짝 밸 정도의 강도로 하시는 것이 권장됩니다. 마른 비만(근육량이 적고 내장지방이 많은 상태)에 해당하신다면 유산소 운동보다 근력 운동을 먼저 늘리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유산소만 하면 오히려 근육이 더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도 걷는 거리가 하루 6,000~8,000보로 늘었을 때 한 달 만에 체중이 2kg 줄었던 경험이 있는데, 일상 활동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때 다시 실감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술을 전혀 안 마시는데 지방간이 생길 수 있나요?
A. 네, 매우 흔한 경우입니다. 지방간의 주요 원인은 술이 아니라 정제 탄수화물과 과당 과잉 섭취로 인한 인슐린 저항성입니다. 특히 빵, 떡, 흰밥 위주의 식사나 달달한 음료를 자주 드시는 분, 운동량이 적은 분, 마른 비만에 해당하는 분들에서도 지방간이 잘 생깁니다. "나는 술도 안 마시는데 억울하다"는 말씀을 주변에서 자주 듣는데, 식단을 먼저 살펴보시기를 권합니다.
Q. 지방간은 간암으로 진행되는 건가요, 아니면 심장이 더 위험한가요?
A. 두 가지 모두 위험하지만, 통계적으로 지방간 환자의 사망 원인 1위는 심혈관계 질환입니다. 간경화나 간암은 그다음 순위입니다. 이 때문에 지방간을 단순히 간 문제로만 보는 시각이 있는데, 저는 그보다는 몸 전체의 대사 이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방간이 있다면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도 함께 점검하셔야 합니다.
Q. 과일이 건강에 좋다고 하는데, 지방간이 있으면 먹으면 안 되나요?
A. 과일이 몸에 좋다는 것 자체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과당 함량이 높은 망고, 말린 과일, 착즙 주스 형태로 다량 섭취하면 간에 부담이 됩니다. 과일은 통째로 씹어 드시는 것이 훨씬 낫고, 사과나 베리류처럼 당도가 낮은 것을 적당량 드시는 것이 좋습니다. "몸에 좋다고 매일 즙으로 드신다"는 분들이 주변에 많은데, 그 형태가 문제일 수 있습니다.
Q. 마른 편인데 지방간이 생겼습니다.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요?
A. 이른바 마른 비만, 즉 체중은 정상이지만 근육량이 적고 내장지방이 많은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유산소 운동보다 근력 운동을 우선적으로 늘리시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무리한 유산소 운동은 오히려 근육을 더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식단은 단백질 비중을 높이고 정제 탄수화물과 당류 음료를 줄이는 것부터 시작하시면 됩니다.
Q. 간수치가 정상이면 지방간도 없는 건가요?
A. 아닙니다. 간수치(ALT, AST)는 지방간 진단의 절대적 기준이 아닙니다. 지방간이 있어도 간수치가 정상인 경우가 많으며, 간수치는 간세포에 실제 염증이 생겨 세포가 손상될 때 올라가는 것입니다. 지방간 여부는 복부 초음파 검사로 확인하는 것이 기본이고, 간수치는 지방간염 여부를 판단하는 보조 지표로 봐야 합니다.
결론
지방간은 성인 10명 중 4명이 가지고 있을 만큼 흔하지만, 흔하다는 이유로 안심해선 안 됩니다. 인슐린 저항성이라는 공통 뿌리에서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이 함께 자라고, 그 끝에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랜 임상 경험에서 저는 "지방간쯤이야"라고 했던 분들이 10~20년 뒤 중환자실에서 다시 마주치는 경우를 적잖이 봐왔습니다.
다행인 것은 지방간은 되돌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별한 약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달달한 음료를 물로 바꾸고, 정제 탄수화물을 줄이고, 일상에서 조금 더 걷는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지방간 진단을 받으셨다면, 그것을 몸이 보내는 첫 번째 경고로 받아들이시고 지금 바로 식단과 생활 습관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참고: LiveWiki — 유튜브 영상 속 핵심을 한눈에 / 대한간학회(Korean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the Li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