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 오남용, 조용한 팬데믹이 다가온다 — 한국·캐나다 현장 경험과 해법
병동에서 근무하다 보면 항생제 처방 오더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나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예전 같으면 항생제 하나로 금방 잡히던 감염이 잘 듣지 않는 경우를 부쩍 자주 마주칩니다. 한국과 캐나다, 두 나라 임상 현장에서 모두 근무해 본 사람으로서, 이 문제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항생제를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오늘은 세계보건기구(WHO, World Health Organization)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10대 위험 중 하나로 지목한 '항생제 내성'을, 통계와 현장 경험을 함께 담아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항생제 내성이란 무엇이고, 왜 '조용한 팬데믹'인가
항생제 내성이란 세균이 항생제에 저항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어 기존 약물로는 치료할 수 없어지는 현상입니다. 항생제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 그 안에서 살아남은 세균이 내성을 획득하고, 이 내성 유전자는 다른 세균에게도 전달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어떤 항생제로도 치료할 수 없는 이른바 '슈퍼박테리아'가 탄생합니다.
세계보건기구는 이를 '조용한 팬데믹(Silent Pandemic)'이라 부릅니다. 코로나19처럼 갑작스럽게 전 세계를 덮친 게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치료 옵션을 좁혀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충격적인 사망 통계
전 세계에서 매년 약 500만 명이 항생제 내성으로 사망하고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대학교 건강측정평가연구소(IHME, Institute for Health Metrics and Evaluation) 연구진이 이끄는 국제 연구팀인 GRAM 프로젝트(Global Research on Antimicrobial Resistance, 국제 항생제 내성 공동연구)가 국제 학술지 랜싯(The Lancet)에 발표한 모델링 연구에 따르면,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50년에는 항생제 내성이 직접 원인이 된 사망만 3,900만 명, 내성균이 간접적으로 관여한 사망까지 합치면 1억 6,900만 명에 이를 수 있다고 예측됩니다. 다만 이는 확정된 미래가 아니라 과거 추세를 바탕으로 한 통계적 추정치이며, 감염 예방과 항생제 적정 사용 등 대응이 강화되면 실제 수치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항생제 내성균 감염 및 관련 합병증으로 숨지는 어린이만 연간 300만 명이 넘는다는 국제 연구 결과도 있어, 소아 감염 관리의 심각성을 보여줍니다. 슈퍼박테리아 감염 환자 중 약 40%가 감염 후 90일 이내에 사망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한국의 상황 —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인체 항생제 사용량은 2023년 기준 31.8 DID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평균인 19.5 DID보다 약 1.6배 높습니다.
(DID란? 'Defined Daily Dose per 1,000 Inhabitants per Day'의 줄임말로, 인구 1,000명 중 매일 몇 명이 항생제 표준 복용량을 쓰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국제 비교 지표입니다.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방식으로, 나라마다 처방되는 약의 종류나 인구 규모가 달라도 서로 비교할 수 있도록 만든 단위입니다. 31.8 DID는 인구 1,000명 기준 매일 31.8명분의 항생제가 소비된다는 뜻으로, OECD 평균과 비교하면 한국은 매일 인구 1,000명당 약 12명분씩 더 많은 항생제를 쓰고 있는 셈입니다)
그 결과는 수치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대표적인 항생제 내성균인 카바페넴내성 장내 세균목(CRE, Carbapenem-resistant Enterobacterales)은 장내세균 치료에 쓰이는 가장 강력한 항생제 계열인 카바페넴에마저 내성을 가진 균을 말합니다. 이 CRE 감염 환자 수는 2021년 약 2만 3천 명에서 2025년 약 4만 9천 명으로, 불과 4년 사이 2배 이상 급증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경고가 있었습니다. 2013년 대비 2016년 국내 인구는 1.6%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항생제 소비량은 17.5% 증가했고 처방받은 환자 수도 15.6% 늘었습니다. 문제는 새로운 게 아니라 오랜 기간 방치되어 온 것에 가깝습니다.
두 나라에서 근무하며 직접 겪은 처방 문화의 차이
제가 두 나라를 오가며 근무하면서 가장 크게 체감한 것은 통계보다도 '현장의 온도 차이'였습니다.
한국 — "일단 항생제부터" 문화
한국에서 근무할 때는 감기 증상으로 내원한 환자에게 항생제가 처방되는 경우를 정말 자주 봤습니다. 바이러스성 질환에는 항생제가 듣지 않는다는 것이 의학적 상식인데도, "빨리 낫게 해 달라"는 환자의 요구와 "일단 처방해 주는 게 편하다"는 진료 관행이 맞물려 항생제가 쉽게 처방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많은 환자분들이 "항생제를 먹어야 빨리 낫는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고, 처방하지 않으면 오히려 "제대로 진료를 안 해준다"라고 느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캐나다 — 항생제는 '최후의 수단'
캐나다로 넘어와 근무하면서 가장 먼저 느낀 차이가 이 지점이었습니다. 감기나 단순 상기도 감염 같은 증상으로는 항생제를 거의 처방하지 않고, 대신 며칠 지켜보자는 접근이 기본이었습니다. 환자들 스스로도 "아무 때나 먹을 생각을 절대 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혀 있었고, 오히려 먼저 "이거 항생제가 꼭 필요한가요?"라고 되묻는 환자들도 많았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요
- 진료 구조의 차이 — 짧은 진료 시간 안에 빠른 처방으로 만족도를 높여야 하는 환경과, 상대적으로 여유 있게 경과를 지켜볼 수 있는 구조의 차이입니다.
- 환자의 기대치 — "약을 받아야 제대로 진료받았다"는 인식과 "불필요한 약은 오히려 몸에 안 좋다"는 인식의 차이입니다.
- 공중보건 캠페인의 누적 효과 — 캐나다는 오랜 기간 항생제 신중 사용 캠페인을 이어온 반면, 한국은 범부처 대응이 상대적으로 최근에야 본격화됐습니다.
물론 어느 한쪽이 완전히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캐나다 방식도 감염이 빠르게 악화되는 경우 초기 대응이 늦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다만 신중한 처방 문화가 장기적으로 우리 모두를 지키는 방향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왜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을까
손 씻기를 열심히 하고 처방받은 항생제를 끝까지 복용하는 개인의 실천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처방하는 쪽의 유인 구조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개별 의료진의 선의에만 기댈 수는 없고, 축산·환경 분야의 항생제 사용은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습니다. 또한 "항생제를 먹어야 빨리 낫는다"는 오랜 인식은 홍보 캠페인 몇 번으로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해외에는 이미 성공 사례가 있습니다
호주와 핀란드는 처음에는 자국 내 항생제 사용량이 OECD 평균치보다 높았지만, 점차 격차를 줄여나가 현재는 OECD 평균치보다 낮은 수준까지 항생제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감소시켰습니다. 국회에서도 이 성공 사례를 연구하고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습니다. 이 나라들은 단순 캠페인이 아니라 처방 가이드라인 표준화, 의료기관별 처방량 모니터링과 공개, 축산 분야 항생제 사용 규제 등 제도적 장치를 함께 갖췄기 때문에 실질적인 감소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과학계의 대응 — 항생제를 대체할 새로운 접근
다행히 국내외 연구진도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2026년 5월 한국과학기술원(KAIST, Korea Advanced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연구팀은 슈퍼박테리아가 면역 체계를 회피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하고 범용 백신 개발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병원균만 선택적으로 사멸시키는 나노입자 기반 신개념 항생제를 개발했고, 박테리오파지를 활용해 내성균을 제거하는 기술도 연구되고 있습니다. 항생제처럼 매번 새로운 약을 개발해야 하는 구조와 달리, 이런 접근들은 내성균의 진화 속도에 덜 민감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정부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 하지만 속도가 관건
정부는 2016년부터 5년 주기로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 대책을 수립해 왔고,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적용될 제3차 대책을 통해 의료기관 내 항생제 적정 사용 관리 확대와 축산·환경 분야를 포괄하는 범부처 대응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질병관리청 주관 아래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농림축산식품부, 환경부, 해양수산부까지 참여하는 구조로 확대된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진전입니다. 다만 2016년 첫 대책 이후로도 CRE(카바페넴내성 장내 세균목) 감염 환자가 계속 급증해 온 것을 보면, 대책의 '존재' 자체보다 처방 현장에서 얼마나 강제력 있게 작동하는지가 관건입니다.
현장에서 느끼는, 필요한 방향
- 의료기관별 항생제 처방률 공개 — 데이터가 투명하게 공개되면 그 자체로 처방 행태에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 바이러스성 질환 항생제 처방에 대한 급여 기준 강화 — 불필요한 처방에는 명확한 제도적 제동이 필요합니다.
- 축산 항생제 사용 총량제 도입 검토 — 호주·핀란드 사례처럼 구체적 감축 목표 설정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 대국민 인식 개선의 지속성 — 일회성 캠페인이 아닌 장기적인 보건교육이 필요합니다.
개인이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
- 항생제는 반드시 처방받은 용법·용량·기간을 끝까지 지켜서 복용합니다.
- 바이러스성 감기 등에는 항생제가 듣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하고, 불필요한 처방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 손 씻기 등 기본적인 감염 예방 수칙을 생활화합니다.
- 남은 항생제를 임의로 보관했다가 다른 증상에 자가복용하지 않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되면 무조건 치료가 불가능한가요?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것은 아니며, 균종과 내성 패턴에 따라 최후 수단의 항생제가 남아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치료 옵션이 제한적이고 예후가 좋지 않을 수 있어 예방과 조기 발견이 중요합니다.
Q2. 캐나다에서는 항생제가 필요한 상황에도 처방을 안 해주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균 감염이 명확하거나 증상이 심각하면 신속하게 처방합니다. 다만 항생제가 효과 없는 바이러스성 질환이나 경과를 지켜봐도 되는 경증에는 즉각적인 처방보다 관찰을 우선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의미입니다.
Q3. 항생제 처방을 국가가 강하게 규제하면 진료권 침해 아닌가요?
완전한 처방 금지가 아니라, 처방 기준을 표준화하고 불필요한 처방에 대한 급여 제한을 두는 방식이 국제적으로도 일반적입니다. 항생제 사용량을 크게 줄인 호주·핀란드도 처방권 자체를 박탈하지 않고, 가이드라인과 모니터링 체계로 자율적 개선을 유도했습니다.
Q4. 국가 대책이 계속 나왔는데 왜 CRE 감염이 계속 느나요?
대책 발표와 실제 처방 행태 변화 사이에는 시차와 간극이 있습니다. 제도가 있어도 강제력이나 모니터링 체계가 촘촘하지 않으면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어, 앞으로는 대책의 이행력을 높이는 것이 핵심 과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